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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Life)/상식(Common)

[펌]한글의 기원을 찾아서.



으으~, 난 우주회의 의장인 외계인 1443호야. 우주회의가 열릴 때면 항성마다 제각각의 외계어를 사용해서 골치가 아파. 물론 최첨단 통역기가 있지만 가끔 최첨단 통역기가 먹통이 될 때면 정말 곤란하다구. 게다가 음성으로 회의 내용을 저장해 놓긴 하지만 수많은 외계어를 제대로 기록할 글자가 아직 없어.

때마침 지구의 2008년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언어의 해라며? 그래서 다양한 글자가 있다는 지구에서 가장 탁월한 글자를 우주 공식글자로 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던 중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합리성, 독창성, 과학성 등을 기준으로 비교한 결과 한글이란 문자가 최고로 꼽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그래서 내가 직접 한글의 DNA를 분석해 우주 공식글자로 자격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해.

한글, 예사롭지 않은 탄생

한글은 언제 태어났을까? 글자는 보통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한글은 만든 사람과 만든 시기, 그리고 만든 목적까지 있는 글자래. 분명한 출생증명서를 가진 세계 유일의 글자로, 탄생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거지.

한글은 조선 왕조의 네 번째 임금인 세종대왕이 1443년 12월에 만든 글자야. 한글의 원래 이름인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란다. 당시에는 한국말은 있었지만 글자는 한자를 쓰고 있었어. 그래서 한국말에 맞는 한국의 문자를 만들겠다는 자주성에,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배워 자신의 뜻을 알리게 하겠다는 자애로운 마음을 담아 한글을 만들었지. 마치 모든 외계인들이 배우고 쓰기 쉬운 글자를 찾는 내 마음을 알고 만든 글자 같아.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글이 없어서 중국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말이 중국말과 달라 중국글과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제 뜻을 쉽게 펴지 못하는 자가 많다.
내가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고
훈민정음이라고 부르겠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목적을 직접 쓴 어제 서문

한글이 태어난 원리

한글의 DNA를 찾으려면 먼저 한글이 어떤 원리로 태어났는지 알아야겠지? 한글은 글자가 가진 소리의 특징과 자질을 그대로 글자 모양에서 알아볼 수 있는 ‘자질문자’란다. 게다가 한글은 기본 글자에 획이나 글자를 더하는 원리로 만들었어. 그래서 쉽게 더 많은 글자를 만들어 활용할 수 있지.

본뜨고!
한글의 자음 ‘ㄱ, ㄴ, ㅁ, ㅅ, ㅇ’은 발음 기관에서 소리를 낼 때의 모양과 글자 모양이 닮게 상형의 원리로 만든 인체공학적인 글자야. 모음 ‘ · , -----,ㅣ’는 동양에서 우주의 세 가지 근원이라고 여긴 하늘, 땅, 인간(천지인)을 본떠서 만든 글자로 철학적인 사상까지 담아 냈단다.

더하고!
기본 자음에 체계적으로 획을 더하는 가획의 원리로 더 거세고 복잡한 소리를 가진 자음이 태어났어. 예를 들어 ㄷ, ㅌ은 ㄴ에 획을 더해 만들었지. 그래서 글자의 모양만으로 소리의 특징과 소리의 관계를 알 수 있단다.

어금닛소리 ㄱ ㄱ-ㅋ
혓소리 ㄴ ㄴ-ㄷ-ㅌ
입술소리 ㅁ ㅁ-ㅂ-ㅍ
잇소리 ㅅ ㅅ-ㅈ-ㅊ
목소리 ㅇ ㅇ-ㅎ-ㅎ

합하고!
기본 모음 세 자를 서로 합하는 합성의 원리로 다른 모음이 태어났어. ‘·’와 ‘ㅡ’를 합해 ‘ㅗ’를 만들고, ‘l’에 ‘ㅗ’를 다시 합해 ‘ㅛ’를 만들었어. 합성의 원리로 만든 ‘ㅛ’를 천천히 읽으면 원래 더했던 ‘l, ㅗ’의 발음인 ‘이오’의 소리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사람의 발성 기관의 모습. 사람은 입술의 모양, 이와 입천장에 닿는 혀의 움직임을 이용해 다양한 소리를 낸다. 발음에 따라 콧소리를 이용해 비음을 내기도 하고 목구멍에서 나오는 공기의 세기도 달라진다.

562년의 신화, 한글은 살아있다

1446년 한글 탄생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지 올해로 562년이 지났어. 그동안 한글도 변화가 있었지. 지금 조선시대에 쓴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면 한글 같긴 한데 처음 보는 글자도 있고 모르는 단어도 있어서 읽기 쉽지 않을 거야. 왜냐 하면 생물이 진화하듯 한글도 언어 환경에 맞게 진화를 거듭하고 있거든.

지금도 한글은 사람들이 쓰기 쉽고 말하기 편리하도록 글자와 발음이 함께 변하고 있단다. 한글은 줄여 쓰거나 바꿔 쓰기에 편하고 조합하기도 쉽다는 특징이 있어.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모아쓰기 때문에 줄여 쓰기 좋거든. ‘되었어’를 ‘됐어’로 간단히 줄여 쓸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문장을 이루는 순서도 자유롭고 단어의 형태도 다양하게 바꿔 활용할 수 있어. 이러한 특징 때문에 마치 생물이 진화하듯 언어 환경에 맞게 계속 변하고 발달하는 거란다.

시간과 함께 사라지다

한글 중 시간과 함께 사라진 글자는 뭘까? 지금의 한글은 24자지만 처음 만들어졌을 땐 28자였어. 현재 사라져 버린 ㅿ(반치음), ㆍ(아래아),ㆆ(여린히읗),ㆁ(옛이응)은 왜 없어졌을까? 당시의 말소리를 쓰기 위해서는 ㅿ, ㆍ,ㆆ,ㆁ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거나 다른 글자로 대체됐기 때문이야. 또 두 글자 이상을 가로, 세로로 이어 쓴 ㆅ, ㅸ, ㅹ도 현재는 쓰지 않아. 자연 환경에 맞는 생물이 살아남듯 언어 환경에 필요한 글자는 살아남고 쓰이지 않는 글자는 사라진 거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 소리도 있단다. 한글은 처음에 중국어처럼 발음의 높낮이가 있었어. 글자 옆에 점을 찍어 글자를 읽는 음의 높낮이를 달리해 뜻을 구별했지만 17세기부터 음의 높낮이가 사라졌어. 그리고 내리는 눈은 길게 발음하고 얼굴의 눈은 짧게 발음하는 식의 장단으로 바뀌었지. 지금은 장단마저 사라지고 있어. 우리의 언어생활이 말 중심에서 책, 신문을 비롯해 인터넷과 같은 사이버 공간을 이용하는 문자 중심 생활로 바뀌었기 때문이야. 문자로 표기되지 않는 장단의 기능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거지.

한글의 DNA 1_탐나는 소리 DNA

한글의 원리를 속속들이 알았으니 본격적으로 한글의 DNA를 분석해 볼까? 내가 가장 먼저 찾은 한글의 DNA는 바로 소리! 복잡한 소리가 많은 외계어를 적기 위해 최고라는 생각이 들게 한 DNA야.

지구에 있는 글자들은 크게 뜻글자와 소리글자로 나눌 수 있어. 한자처럼 글자가 뜻을 나타내면 뜻글자라 부르고, 알파벳이나 한글처럼 글자가 말소리를 나타내는 글자는 소리글자라고 해. 한글은 ‘쓰기 편한’ 소리글자야. 소리글자가 왜 사용하기 편하냐고? 뜻글자는 새로운 생각이나 사물에 해당하는 말을 적으려면 새로운 뜻을 지닌 글자를 만들어야 해. 1000개의 사물을 적기 위해서는 1000개의 서로 다른 글자가 필요하지. 한자는 나무를 뜻하는 木, 개를 뜻하는 犬처럼 각각의 뜻글자를 만들어 써야 해서 현재 5만 자가 넘어. 하지만 소리글자인 한글은 새로운 글자를 만들지 않고 기본 24자만으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말을 적을 수 있어.

한국이 세계적으로 문맹률이 가장 낮은 까닭은 한글이 소리글자 중에서도 ‘배우기 쉬운’ 소리글자이기 때문이야. 예를 들어 알파벳 ‘a’는 apple에서는 ‘애’ 발음이 나며 ‘an’에서는 ‘어’ 발음이 나지만, 한글의 ‘ㅏ’는 ‘알사탕’, ‘아지랑이’ 등 다른 단어에서 모두 ‘아’라는 소리 하나만 갖고 있어. 이렇게 한글은 글자가 상황마다 어떻게 소리 나는지 따로 익히지 않아도 돼서 배우기 쉽단다.

뇌 속에 소리사전을 펴다
한글은 사람들의 뇌 속에 어떻게 저장되어 있을까? 뇌는 한글 단어를 발음 소리 정보로 판단해. 그래서 뇌는 발음이 비슷한 어휘가 많은 단어일수록 단어를 파악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 ‘국민’의 ‘국’자의 발음인 ‘궁’과 같은 ‘궁지, 궁전, 궁금, 궁리’ 등의 어휘가 많으면 단어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단 말이지.

학자들은 머릿속에 있는 한글이 실제 사전처럼 ‘ㄱ, ㄴ, ㄷ’ 순서가 아니라 자음과 모음을 모아 쓴 ‘달’처럼 음절 단위로 저장되어 있을 거라고 보고 있어. 그럼 ‘ㄷ,ㅏ,ㄹ’로 글자를 나눠서 찾지 않고 ‘달’이라는 글자 한 덩어리로 찾기 때문에 더 빨리 찾을 수 있단다.

뇌 속에 동영상을 켜다
소리글자인 한글은 다양한 소리와 동작을 그대로 적을 수 있어. 뇌는 ‘딸랑딸랑’ 같은 소리를 담은 의성어나 ‘폴짝폴짝’ 같이 동작을 나타내는 의태어를 볼 때 얼굴 인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방추열’이라는 부분이 활성화된단다. ‘까악까악’이란 단어를 보면 까마귀가 날며 울고 있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처럼 한글의 의성어와 의태어를 보면 동영상을 보는 것 같은 반응이 일어나는 거지. 그래서 한글이 표현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을 거라고 보는 학자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