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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황에 … 92%가 일터 직행 대한민국 ‘취업챔피언’ 대학교

방학 중 저녁 8시, 학생들 모여 ‘하이브리드차’ 만드느라 열심 … ‘기업이 서로 데려가는 학교’ 이유 있었다
캠퍼스 - 한국기술교육대 ‘글로벌 인재’ 키우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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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대 학생들이 자동차를 제작하고 있다.

월간중앙 경부고속도로 목천나들목으로 빠져 나와 국도 21호선을 타고 5분 정도 달리면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캠퍼스를 만날 수 있다. 병천순대와 아우내 장터로 유명한 마을(천안시 병천면 충절로) 근처에 있다. 캠퍼스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독립기념관이 있고, 오른쪽에는 유관순 열사 유적지가 있다.

학교로서는 ‘좌청룡 우백호’를 갖췄다고 하겠다. 이 대학 전운기 총장은 “민족의 성지 한가운데 자리 잡았으니 입지는 최고”라고 자랑한다. 8월6일 밤 8시 한국기술교육대학 공학관 1층 한 실습실을 찾았다. 기계정보공학부 3학년 이동현 씨 등 학생 8명이 방학 중임에도 하이브리드 자동차 제작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씨는 “수업시간에 배운 지식으로 수개월간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만든 자동차는 9월 대학에 졸업작품으로 제출된다. 이 대학에서는 졸업하려면 반드시 졸업작품을 내야 한다. 조남준 입학홍보처장은 “24시간 실험실습실을 개방하는 등 현장실습 중심 교육이 우리 대학의 특징”이라며 “덕분에 지난 14년간 취업률이 90∼100%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이 대학 졸업생 가운데 92%가 일자리를 찾았다. 삼성·현대·한국전력 등 대기업과 공기업에 36%, 중견기업에 45%가 취직했다. 정규직은 70%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은 세계적 경제 한파 속에서 일군 성과다.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과학기술부)의 취업 통계에서도 1995년부터 2006년까지 취업률 100%를 기록했다.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도 취업률부문 2년 연속(2007, 2008년) 1위를 차지했다.

취업은 대학의 대표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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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대 학생들이 직접 만든 로봇.
경제난 속에서도 ‘취업’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메카트로닉스학과 4학년 권석령 씨는 “졸업작품을 만들기 위해 3학년 때부터 실습실에서 살다 보니 취업해서도 타 대학 출신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학생 76%는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기숙사는 새벽 2시에 문을 닫는다. 그때까지 실험실에서 실습하는 학생이 있기 때문이다. 기숙사 문은 2시간 뒤인 새벽 4시에 다시 연다. 이 시간에 상당수 학생이 실험실로 간다. 이형우 입학·홍보부장은 “공학계열인 대학 특성상 실험이 진행될 때까지 잠시 눈만 붙이는 학생이 많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2학년 때부터 80여 실험실에 의무적으로 배정된다. 실험실은 24시간 개방된다. 실습과제가 많아 밤샘하는 학생이 허다하다. 이론과 실습 수업은 50대 50으로, 비율이 같다. 일반 4년제 대학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교과 운영이다. 졸업필수 학점은 일반 4년제 대학의 130학점보다 20학점 많은 150학점이다.

이 같은 실무 중심 교육 시스템은 1991년 설립 당시부터 운영 중이다. 뿐만 아니다. 전교생은 교직과목을 필수로 이수해 직업훈련교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또 토익 600점 이상을 얻어야 졸업할 수 있다. 졸업생은 의무적으로 연구작품을 제출해야 하며, 작품이 부실하면 졸업이 안 된다.

졸업작품 심사는 현장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적 종합설계(Capstone Design) 능력’ 배양에 초점이 맞춰진다. 캡스톤 디자인은 1970년대 후반 미국의 산업경쟁력이 일본에 뒤처지자 그 대안으로 만들어진 공학교육이론이다. 해석 중심의 설계교육을 지양하고 공학도들 스스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작품 기획에서부터 설계·제작까지 전 과정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창의적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서화일 정보기술공학부 교수는 “기업에서 원하는 선진 교육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운영하다 보니 교육과정에 빈틈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등록금(이공계열 537만 원, 인문계열 374만 원)은 국립대 수준으로 싸다. 장학금 수혜율은 76%나 된다. 교수 1인당 학생수가 26명으로, 거의 맨투맨 수업이 가능하다고 한다. 기숙사 한 동은 아예 ‘국제학사’로 지정해 영어만 사용하도록 했다.
현장 실무능력 향상을 위해 교수 채용과 관리도 깐깐하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다음 산업체나 연구소에서 3년 이상 근무 경력이 있어야 교수로 선발한다. 전체 교수 152명을 S·A·B·C·D 5등급으로 분류해 2년 연속 D등급을 받으면 호봉 승급이 정지된다. 올해는 D등급이 4명 나왔다고 한다. 교수 대부분을 3∼4년에 한 번씩 6개월간 기업체에 파견하는 ‘교수현장연구학기제’도 시행한다.

산업현장에서 기업과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업계의 신기술 동향과 산업체 수요 방향을 파악해 교과과정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기업의 기술 애로를 해결해주고 졸업생 취업처를 확보하는 효과도 거둔다. 학생들도 전공필수과목을 중심으로 방학 때마다 2∼4주 동안 산업체에서 현장실습한다. 학교 실험실에는 실습보조 전문인력이 학부마다 2∼3명씩 30명이 있다. 단순보조가 아니라 석·박사급 전문가다.

산업체 기술교육의 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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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기대는 이론과 실험실습 비중이 50대50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2. 디자인공학과 학생이 자신이 만든 작품 앞에서 웃고 있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도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다. 주요 기업체 인사담당자를 초빙해 수시로 채용설명회를 연다. 맞춤식 취업지도를 위해 ‘취업클리닉센터’도 운영한다.

여기서는 취업특강은 물론 입사서류 1대1 지도, 모의면접 등 입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도한다. 한국기술교육대학의 자랑거리는 또 있다. 단순히 재학생 교육에 그치지 않고 산업현장인력 기술교육도 책임진다.

우선 2007년부터 3년째 현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기술과 지식을 리모델링해 주고 있다. 또 일자리를 잡지 못한 이공계 졸업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익히도록 도와준다.

기술훈련은 대부분 2006년 3월 문을 연 KUT/삼성전자 첨단기술교육센터에서 진행된다. 이곳은 한국기술교육대가 장소를, 삼성전자가 설비를 제공해 만들었다.

첨단 기술교육센터는 천안시 두정동에 있는 산학협력 전문 캠퍼스(제2캠퍼스)에 있다. 현업 종사자 리모델링 교육 프로그램 수료자는 지금까지 80여 업체에 6만여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대기업 종사자가 2만여 명(36%)이다. 2007년 2월 고려대를 졸업한 김정훈(28) 씨의 경우 그 해 3월부터 천안의 한국기술교육대에 있는 ‘KUT/삼성전자 첨단기술교육센터’에서 3개월간 기술연수를 받았다.

이 대학이 대졸 미취업 학생을 위해 마련한 ‘산업인력양성’과정이다. 김씨는 이곳에서 자동차부품분야 전기·전자회로와 도면 해석 등을 체계적으로 배운 뒤 외국계 전기·전자제품회사인 ABB코리아 전력사업부에 지원해 합격했다. 김씨는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을 배워 취업했더니 경력사원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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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술교육대 공학교육센터 조감도.

광역경제권 인재양성사업 대상 기관 선정

산학협력단이 2005년부터 운영하는 ‘이공계 미취업자 인력양성’사업에서는 해마다 150여 명을 교육한다. 이 사업은 교육과학기술부나 충남도 등에서 5억∼10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실시한다. 주요 기술교육 내용은 기계·산업설비·전기전자(정보통신) 등이다. 연수생들은 6개월간 이력서 작성 등 기본 취업교육부터 전문 기술교육까지 취업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배운다.

프로그램 이수자 가운데 70% 이상이 일자리를 찾았다. 이우영 산학협력단장은 “청년실업자는 많은데 산업현장에서는 쓸 만한 인력이 없는 산업분야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술교육대는 3월1일 ‘노동행정연수원’을 신설했다. 이는 한국노동교육원의 공공부문 노동교육을 이관받아 만든 기관이다.

중앙과 지자체 공무원, 일반 교원 등을 대상으로 노동교육을 한다. 송봉근 노동행정연수원장은 “고품질의 노동교육으로 공공부문 노사관계 안정과 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한국기술교육대학의 6개 학부와 3개 학과 가운데 신입생에게 인기 있는 분야는 정보기술공학부(정원 172명)와 메카트로닉스공학부(정원 145명)다. 이들 학과 졸업생 가운데 50% 이상은 대기업에 취업한다.

한국기술교육대 전체 졸업생 대기업 취업률(35%)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 이들 전공에서는 앞으로 우수 인력이 더욱 많이 양성될 전망이다. 한국기술교육대가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광역경제권 인재양성사업’ 대상 기관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이번 사업은 한국기술교육대 ‘E²-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인재양성센터’가 담당한다. E²는 환경(Environment)·에너지(Energy)의 줄임말로, 친환경 에너지 절감형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분야 인재를 양성한다는 의미다. 한국기술교육대는 이 사업에 올해부터 2013년까지 5년 동안 해마다 50억 원씩 총 250억 원을 지원받는다.

광역경제권 인재양성사업은 정부의 ‘광역경제권 신성장 선도산업 육성계획’에 따라 실시되는 것으로, 한국기술교육대를 포함해 전국에서 19개 대학이 대상 기관으로 선정됐다. 지역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 발전정책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으로, 충청권은 의약·바이오산업과 뉴IT산업 등을 추진한다.

광역경제권 인재양성사업은 이를 뒷받침한다. 지방대학이 선도산업 발전에 필요한 우수 인재를 키워 공급해 대학과 산업체·지자체 등 지역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다. 인재양성센터는 한국기술교육대와 지자체·산업체·연구소·비정부기구(NGO) 등 25개 기관과 협조체계를 구축해 운영한다.

지자체로는 충남·북과 대전시가 참여하고, 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 등 대기업도 힘을 보탠다. 인재양성센터는 앞으로 정보기술공학부·메카트로닉스공학부의 학부와 대학원생의 실습·연구활동을 집중 지원한다. 학생들이 참여 기업이나 연구소에 파견돼 실습도 한다. 4학년 학생 등을 중심으로 취업 클리닉도 운영하고, 장학금 혜택도 대폭 늘어난다.

또 학부 졸업 미취업자 30명을 선발해 재교육한다. 대학은 참여 기관과 공동으로 그린반도체(친환경)와 무선통신분야 연구활동도 벌인다. 한국기술교육대 인재양성센터 정종대(정보기술공학부) 교수는 “친환경과 에너지를 고려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비산업을 이끌 우수 인재 양성과 공급에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김방현 중앙일보 사회부문 기자 [kbhkk@joongang.co.kr]

월간중앙 9월호